값어치(worth) #1
기업의 가치에 대한 이론과 실무를 다룬 책과 웹사이트, 유튜브, 블로그, 논문, 자료는 수없이 많다. 오랫동안 나는 그런 자료 대부분이 무언가 현실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느껴 왔다. 내가 보기엔 중요하지만, 충분히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 같다.
그것은 '현실적인 투자 기간 내에 가격이 움직일 수 있는 잠재적인 범위'를 우리가 실제로 가늠하는 방식과, 이론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구하는 방식 간의 괴리가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나는 시장에서 혹은 합의된 거래를 통해 드러나는 실제 '가격(price)'과 이론적인 '가치(value)'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더 줄여줄 수 있는, 일종의 임시적이고 대안적인 개념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값어치(worth)'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값어치란 이론적인 가치의 더 현실적인 형제와 같다. 그것은 현실적인 투자 기간(혹은 전문 용어로 '투자 지평(investment horizon)') 내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가늠되는 가격의 범위를 말한다. 따라서 이미 미래의 경제적 결과를 모두 고려해 현재 가치로 표현한 '가치'와는 다르다.
가치는 '기업의 미래 현금 흐름이(물론 모두 추정이다) 어떠한 할인율로 조정했을 때(이 역시 추정이다) 지금 현재 적정한 가격은 얼마'에 대한 것이다. 혹은 어떤 기업이 비슷한 기업과 비슷한 상대적 가격에 거래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숨겨진 수많은 가정과 추정들이 있다(단지 사고 과정에서 잊혀지거나 생략될 뿐이다).
값어치는 '오늘 가격은 이렇지만, 예컨대 다음 달 쯤에는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역시 또 다른 추측(speculation)이지만, '가치' 개념은 이 단계의 추측은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해 가치 개념에 깔린 암묵적 가정은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아마도 가격이 이 가치에 수렴할 것이다, 아니, 수렴해야 돼'라는 것이다. 여기서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을 배제하는 것은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의 투자 행위에서 아주 현실적인 요소를 하나 지우는 것이다.
설사 오늘의 가격과 내재가치가 이미 서로 수렴된 상태라고 해도, 내일의 가격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금융시장과 기업의 환경은 매일 조금씩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일의 가격에 대해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완고한 가치 순수주의자는 '그렇다면 내일 가치를 다시 계산하면 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일의 가치를 오늘 계산해서는 안 되는가? 가치 순수주의자는 그것은 '투기'에 불과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과 이론적인 가치 평가는 이미 많은 추측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추측을 할 것이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값어치의 정의에서 중요한 단어는 '기간', '가능성', '가늠', '범위'다. '기간'은 지금의 가격이 특정 시점에는 얼마가 되어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며, 현재가치에 이미 시간 개념이 고려되었다고 설명하는 이론적인 내재가치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반면 나머지 세 단어는 가격 메커니즘의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더 명료하게 표현한다. 기업가치 이론이 가치가 어떤 구체적인 가격에서 확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가치가 근본적으로 매우 불확실하다는 기본 전제를 잊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가치의 불확실성이라는 주제는 밸류에이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주제도 아니다.
값어치는 애널리스트들이 쓰는 목표가격과도 다르다. 목표가격은 기본적으로 이론적인 가치평가에 의해 계산되거나, 혹은 애널리스트가 조만간에 도달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가격 수준을 정한 다음 이론적인 모델이나 가치평가방법을 거기에 끼워 맞춰서 계산한다. 엄밀히 따지면 전자의 경우만 가치평가에 해당하겠지만, 경험 있는 애널리스트는 가격이 이론적인 목표가격대로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후자의 경우에는 값어치의 개념과 유사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목표가격이 이런 식으로 계산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기업이 거래되는 금전적 기준을 표현하는 데에 이미 가격과 가치라는 두 가지 개념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개념이 지금껏 공론화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금융 세계는 온갖 세분화된 개념들을 표현하는 용어들과 신조어들로 가득하다. 금융 상품들의 이름이 얼마나 다양하고 또 얼마나 비슷비슷한 여러 가지가 존재하는지 떠올려 보라. 그런데 금융의 최상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격과 가치의 영역에서 이제껏 단 두 가지 용어만이 그토록 다양한 투자자들과 투자 행위를 전부 포괄할 수 있다고 여겨져 왔다는 사실은, 다시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론적으로는 비록 엄정하지 않더라도, 현실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실제 거래 행위를 더 적절히 포착할 수 있는 개념과 용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제껏 누구도(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생각을 주장한 이를 보지 못했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이런 생각을 널리 퍼뜨리지 못했으므로, 내가 직접 이 아이디어를 다듬어 보기로 했다.